질서유지선 千字文

  집회나 시위 현장에는 어김없이 질서유지선이 설치된다. 질서유지선은 경찰이 집회나 시위에 있어 공공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최소한의 범위에 설정한 통제 구획선이다. 질서유지선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범에 규정되어 있다. 선을 넒는 순간 불법행위인 것이다. 하지만 질서유지선은 권위를 잃은 지 오래다. 수많은 시위대가 거리낌없이 질서유지선을 넘는다. 주변 경찰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선을 넘지 말라고 소리치는 것 뿐이다. 시위대의 귀에는 전혀 들어오지 않는 소리다. 한번 무너진 질서유지선은 다시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이미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시위 현장에서 무참하게 짓밟힐 뿐이다. 법이 부여한 권위는 어디에도 없다.

  집회나 시위의 공통점은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는 점이다. 1인 시위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뜻을 같이하는 여럿이 모인다. 개인은 절대 법의 권위를 넘지 못한다. 1인 시위 현장은 언제나 평화롭다. 그러나 집단은 다르다. 집단은 알 수 없는 힘을 갖는다. 집단이 만들어내는 군중심리 속에 도덕이나 법의 개념은 없다. 무명성, 무책임성, 무비판성 등으로 구성된 군중심리는 집단이성을 마비시킨다. 여기에 익명성이 더해지면 그 속의 인간은 완벽히 이성을 상실한다. 인간이 만든 법은 그 앞에서 무용하다. 원시 시대 사회가 그랬을까. 이성을 상실한 집단 앞에서 법이 부여한 권위는 모습을 감춘다.

  법이 사라진 집회나 시위 현장은 아수라장이다. 인간다운 삶을 모두가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든 법이 없으니 당연한 결과다. 집단의 용기로 법을 넘어선 이들은 당당하다. 자신들의 행동에 대한 이성적 판단없이 의식이 시키는대로 행한다. 법을 어긴 그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공권력의 제재다. 국가는 법에 정해진대로 기능한다. 국가의 뒤에는 법이라는 정당성이 버틴다. 합법적 정당성과 불법적 정당성의 싸움에서 언제나 승자는 없다.

  지난 11월 14일 광화문 광장 일대에서 대규모의 시위가 벌어졌다. 질서유지선은 떨어져 나갔고 현장은 아비규환이었다. 시위대도 경찰도 이성을 잃고 서로를 증오했다. 법이 기능을 상실한 그곳에서 불법과 합법의 경계선은 무너졌다. 시위가 끝난 후 이성을 찾은 경찰과 시위대는 서로의 불법을 추궁한다. 이성을 벗어버린 자신들의 모습이 부끄럽다. 15일 오전 광화문 광장엔 은행잎만 소리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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